2004년 10월 14일
Y대 게시판에 붙었다는...

처음 본 게 ㅇㄱㅎ 님 홈피에서였으니까 거의 뷁년 전이다 -.-
새삼스레 왠 뒷북? 하다가 다 저녁에 일하기도 싫고 밥 먹을 때까진 딴짓하며 좀 놀아도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전에 봤을 때도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입안에서 맴맴 돌다가 사라져버려 안타까왔던 기억이 나서 몇 줄 끄적여 볼까보다. (읔, 예상치 못했던 회식에 끌려나가서 밥을 너무 오래 먹고 들어왔다. >_<)
보는 순간 "아햏햏~"이란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나 싶었다.
읽는 사람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명령조는 내용이 옳든 그르던, 본래의 의도가 무엇이든 좋지 않다. 저 글을 읽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일단 "x랄하고 있네~ 남자가 다 범죄자냐" 하고 불쾌해 하는 것,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_- 맘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하든 길 가는 여자한테 행동으로 직접 범법 행위를 할 것들이 전체 대한민국 남자들 중 한 줌이나 되겠냐 말이다. 어떤 xx가 그런 xx인지 구별할 방법이 없으니 손톱의 때만큼이라도 가능성 있다면 누구에게나 얘기를 해야겠다 싶었다면 좀 더 조심스런 방법을 선택해야 했다. 어려서 잘 몰랐다는 변명이 통하기엔 사회적 통념이란 게 대학생을 너무 과대평가한다.
솔직히 저기 나온 항목들 하나하나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동네라고 특별할 게 있나 싶긴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여자라는 걸 의식하고 몇 년 살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일이 아닐까?
DC에서 저 사진 밑에 줄줄이 달린 리플을 보면, 빨간 밑줄이 그어진 첫 번째 항목에 분개하는 이들이 유난히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래, 기분 상할 것 같다, 그런데 나 역시 늦은 시간에 퇴근할 땐 차라리 아무도 만나지 않았으면 싶다. 어두운 곳에서 낯선 사람은 무섭다. 어떤 경로를 택하던 15분이면 충분한 거리이긴 하지만 퇴근할 땐 절대로 집 근처의 중고등학교 담 길로 다니질 않고 조금 더 돌아야 하는 큰 길 쪽을 선택하게 된다. 공부도 일도 집에서 집중할 수 있는 체질이 절대 아니니 무서우면 일찍일찍 다니라는 말은 무효다 -.-;;;
꼭 어두울 때만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딱 한번 '바바리맨'을 만난 적 있다. 일요일이었고, 무거운 책가방 매고 버스 시간 맞추느라 허둥대지만 않으면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기분 좋을 정도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내 서점엘 가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큰길까지는 천천히 걸으면 한 15분 정도 거리였다. 길 양 옆으로는 낮은 돌담 너머로 귤 밭이었고 집이 거의 없었는데 비 오는 일요일 늦은 아침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학생~"하고 부르는 소리에 무심코 쳐다 봤더니... 부끄러운 건 아는지 오토바이 안전모를 쓰고 선글라스까지 낀 주제에 (바바리는 안 입었네) 바지만 내린 미친 xx 하나가 서 있었다. 지금은 "풋, 천하에 찌질한 인간이로세~"하고 비웃고 있지만 그땐 무서웠다 -_- 으악~ 하고는 정신 없이 도망치고도 한동안은 휴일에 비가 오면 아예 집 밖엘 나다니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여자들은 성폭행의 피해자가 되고도 가해자 이상으로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대학교 때 우리 과 선배 하나가 단과대 동아리 여자 후배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적이 있다. 자퇴를 한다는 조건으로 형사 소송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그 선배는 남자들 사이에서 소위 '진국'이라는 평을 듣는 발 넑고 인간성 괜찮다고 소문난 xx여서 과 전체가 떠들석했었다. 그때 내 동기들 중에는 분명 새벽 2시까지 남자와 단 둘이 술을 마신 조신하지 못한 '기지배'를 비난하던 xx들이 있었다. 그 xx들이 유난히 반여성적인 것들이라서 그런 걸까?
나와 같은 대학을 나온 동생이 기숙사에서 지낼 때 같은 방의 선배는 학교 축제 기간에 기숙사에서 학교로 이어지던 뒷길에서 어떤 1학년 xx에게 강간을 당할 뻔 했다.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는 그 아이에게 가해자 부모라는 것들이 찾아와서 '니 몸가짐이 칠칠치 못하니까 우리 아들이 잠깐 정신을 잃은 것 아니냐'며 합의를 요구했다는 얘기를 직접 목격했다는 동생이 전해 주었다. 그 인간들이 유난히 경우없고 무식한 족속이었던 것이길 지금도 바란다.
이런 일들이 지금은 정말 달라졌을까? 어두운 길에서 99% 아무 잘못이 없을 남자들이 혹시 나머지 1%게 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그저 오바에 x랄하는 걸까?
무서우면 일찍일직 다니라거나, 애인이나 남자친구를 만들어 보디가드로 삼으라거나, 무술을 배워서 스스로를 지키라는 말은 무효다.
역시 대학 다닐 때, 기숙사를 나와서 한 1년 간 이모 집에서 지낸 적이 있다. 15층 아파트의 14층이었다. 벼락치기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음에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귀가 시간은 12시를 훌쩍 넘기곤 했다. 딱 한번 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14층이 아닌 5-6층에서 선 적이 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술을 좀 마신 것 같은 아저씨가 탔을 때 순간적으로 무서웠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사람이 혹시 나쁜 마음으로 누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한) 의심도 했던 것 같다. 그 아저씨가 나보다 먼저 10층 쯤에서 내릴 때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려고 애쓰면서도 불안에 떨었던 기억이 나면서, 첫 번째와 함께 가장 많은 분노를 불러 일으킨 것 같은 일곱 번째 항목이 이해가 되었다. 왜 나중에 타는게 아니라 먼저 타겠다고 하는지도 -_-
확실히 이건 불편한 상태이다. 의심하는 쪽도 의심받는 쪽도 더럽고 치사한 상태, 그런데 현실이다. 현실이다 보니 정말로 일이 터진다면 피해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쪽이 조금 더 민감하고 오바도 하고 x랄도 하게 되는. 대자보의 무례한 명령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내가 속한 반쪽을 깔아 뭉개는 리플들이 주렁주렁 달린 걸 읽다 보면 솔직히 그 속좁음이 더 속상하다.
# by | 2004/10/14 17:43 | 그래도 | 트랙백(1) | 덧글(2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아버지의 걱정
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듯이 '대학에 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정말일까하는 궁금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에 한껏 부풀던 대학교 입학식 전날, 조용히......more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하면서, 무섭다기보다는 신경질이 났습니다. 조신하게 학교 공부 잘 하고, 소위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조신하게 바로 집으로 직행하는 것도 잘못이란 말이냐.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더러운 꼴을 안 당하는 거냐...이런데도 내가'저, 강간당할 뻔했어요'라고 하면 여자 애가...몸가짐이... 운운하겠지... 하는 생각에서요.
그 이후론 부모님께서 꼭 마중을 나와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여자로 살려면 참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야 합니다. 싫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껏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변한 것은 없습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저런 설익은 주장에 대해 '미친 년들, 지랄하고 있네'라는 욕설이 좀더 공공연하게, 그리고 좀더 많이, 그리고 어찌 보면 정당한 것처럼 행해질 수 있게 된 것 정도랄까요.
마지막 문단에 심하게 공감합니다.
언제부터 좀더 피해를 많이 입는 사람들에게만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게 되었을까요.
내가 보행자의 입장에서 밤에 골목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으니, 모든 자동차는 밤에 좁은 골목길을 다니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가 뭔지 모르겠군요. 일하다가 새벽에 택시타고 퇴근한 적이 많은데, 1차선으로 택시가 달리고 있을 때면 반대편 차선을 달리는 차 중에 음주운전이 얼마나 될까 두려운 적이 저도 많습니다. 99%는 아니겠지만, 1%의 음주운전자 때문에 제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잘못은 아니겠죠.
아니면, 사람의 문제로 돌아와서, 강간 전과가 있는 사람은 또 그럴 개연성이 높으니 자유로운 통행을 제한해야 할까요? 나이를 스물 넘게 먹었으면 적어도 뭐가 합당한 주장인지 판단할 정도는 된다고 봅니다.
쟤네들이 위험해 보이는 것은 저런 식의 설익은 주장과 급진적인 주장만을 익힌 후 사회에 나와서 그것을 관철시킬려고 하는 여자들을 양성하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서로 같이 잘 살아갈 방법을 생각하기 보다는 모든 남자는 잠재적으로 여자의 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도 많이 보이고,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명사와 형용사에 꼬투리 잡아서 시비거는 사람들도 많이 봤거든요. 모든 사고를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옆에서 보기에 상당히 햏스럽죠. 높이 솟은 건물이나 조형물만 보면 전부 남근을 생각하고 거기에 얽힌 가부장제의 권력을 읽어내려고 하는 것이 과연 정상인지 모르겠습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제도 남자-여자 문제라기 보다는 세태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네요. 80년대까지만 해도 같은 골목에 있는 수십가구의 얼굴을 대부분 알고 지냈으니 낯선 사람을 볼 기회가 그만큼 적었고 두려움을 느끼는 일도 적었겠죠. 낯선 것은 늘 불편하기 마련이니까요. (복도식에 엘리베이터 한두 대인 아파트라면 대략 낭패. -_-;;)
못난 아들 놈 하나 가지고 그것만 감싸고 도는 태도는 역겹기 짝이 없죠. 그런데 요즘 젊은 부모들 애 키우는 것 보면 그 세태는 앞으로도 여전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요. -_-;
달빛시위 성명서의 취지와 내용에는 동감합니다만, 연세대 총여학생회의 변명은 여전히 구차하군요. 저 성명서의 내용을 실천하자는 구체적 내용으로 어떻게 저런 대자보를 만드는지... -_-;;
물론 어떤 집단에나 극단으로만 치닫는 사람들 몇명은 어쩔 수 없겠지만요. DC 게시판에서 화가 났던 이유는 게시물 아래 주렁주렁 달린, '잘 걸렸구나' 하고 달려드는 저 주장들이 설익은 것 이상으로 야비한 리플들이 때문이었습니다.
달빛시위 성명서의 취지와 내용에 저도 동감합니다.
제->저
물론 성폭력 피해자를 탓하는 사람들이나 DC를 비롯한 인터넷에서 찌질대는 남자들은 저도 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가산점 문제로 이화여대 게시판을 온갖 욕설로 쑥밭을 만들거나, 월장사태와 같은 폭력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를 위해서라도 전부가 힘들다면 제일 심한 놈들 만이라도 추려서 엄벌에 처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남자들이 많다고 여성단체들의 억지스러운 주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겠죠. '무식하고 과격한 남자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같이 과격해져서 극단으로 가지 말고,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살려서 옥석을 가려가면서 문제들을 해결해갔으면 좋겠습니다만, 그 '과격함'은 남자들을 닮아가고 양측의 극단적인 주장만 넘쳐나니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남자들은 예비군복만 입으면 다 개가 된다는 것, 거짓말입니다. 저같이 군복을 입건 사복을 입건 길이나 화장실에 침 안 뱉고 담배꽁초 안 버리는 사람들도 일부 있으니까요. 훈련가서 보면 대체로 개판인 것은 사실이지만요. -_-;;
제 자랑하려던 것이 아니라, 군복을 입혀놔서 개같은 짓을 하는 남자들은 평소에도 개같은 짓을 하는 놈들일 거라는 겁니다. 대체로. 에이... 우울하네...
여자 입장에서는 저렇게 해 주면 참 고맙겠다.. 싶은 것들입니다.
저런 의견이 남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이렇게 합시다' 하고 나왔으면 몰라도
강압적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니까 말이 많았던 것 같네요.
저기 써 놓은 일이 대단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좀더 강도가 약한 일들은 일 년에도 몇 번, 더 약한 일들은 한 달에도 몇 번씩 겪었고, 또 우리나라 여자들 대다수가 겪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을 다 잠재적 범죄자로 단정하는 것 같은 저런 자보에 찬동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앞에서도 썼지만 정말 설익고 어설픈 주장이고, 가장 취하지 말았어야 할 형식의 행동이었죠. 조금만 더 머리가 좋았다면 저렇게 안 했을 텐데...하는 안쓰러움마저 느낄 정도로요.
(솔직히 저는 저런 문제에 대해선 굉장히 시니컬해졌습니다. 다 포기했거든요. 유아 때부터 애들을 잘 키우지 않는 이상, 지금 머리 굵은 인간들-남녀 모두 포함-을 설득시켜서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접은 지 오래라서요. 그래서 저런 일을 소재로 하는 대화에는 아예 껴들지도 않습니다.)
"내가 당할 위험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 불특정 다수의 자유를 제한하겠다는 식의 발상"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발상자체가 생겨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먼저이고,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좀 설익었다고한들 아주 근거없거나 그냥 지나칠만한 문재가 아니라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글을 트랙백으로 하나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