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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_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 정혜윤

정혜윤의 『침대와 책』은 별로라고 생각했다. 하긴 '남이 읽은 책' 얘기라는 게 어떻게 보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긴 하다. 별 기대 없이, 그냥 이 사람은 이런 책을 읽었구나, 하며 지나갔더라면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때 같은 은근한 반감까지는 안 생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제목과 광고 문구 -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속는 놈이 바보-_-였다고 생각한다 - 에 괜한 것을 기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제목을 보고, 아이고, 아무래도 또 낚이겠구나, 싶었다.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 라뉘 말이다. 물론 어떤 이름은 들어는 보았으나 크게 관심 가진 적이 없고 어떤 이름은 은근히 '당신은 별로야' 하고 있었고 다른 몇몇의 이름들은 '어쩌면 좋아하게 될 것 같은데 아직은 아는 게 별로 없네' 하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호감을 갖고 기대에 차서 들춰본 사람들의 얘기가 그냥 평범하구나, 아니면 어쩐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던 거랑 특별히 다르지 않구나 정도인 경우가 많았다. 그럴 수도 있지, 남 얘기란 게 원래 그렇기도 하고, 스무 쪽이 채 안 되는 짧은 글 안에서 한 사람의 온전히 안 것 같은 착각을 얻는다는 게 말이 안 되지, 하고 넘겼다. 뜻밖의 당황스러운 수확(?)은 정이현 씨라고나 할까, 그래봤자 딱 꽂히는 것 같은 부분이 이런 것인 걸 보면 내가 참 그 사람을 안 좋아하는 게 사실이지 싶지만. 사실은 이런 말도,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간파하고 내 놓은 게 아닐까 싶은 의심조차 하는 걸 보면, 좀 많이 안 좋아하는 거 맞다, 쿨럭.
"어떻게 하면 어른들이 좋아하는 시를 쓸 수 있는지 나는 다 알고 있었어요. 나는 나 자신이 카피라이터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게 짜깁기였죠. '가을, 하늘, 창공' 이런 게 주어지면 미리 준비한 아무 상관 없는 시구들을 쓰고 거기에 가을의 이미지를 살짝 얹어주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어른들이 원하는 걸 간파했어요. 거기엔 학교 대표로 백일장 대회에 나가니 어른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도 강하게 작용했어요. 좋은 시구를 이미지만 살짝 바구면 정말 잘 썼다는 칭찬을 들었는데 속으로는 알고 있었죠. '나는 가짜다. 나는 정말은 시인이 될 수 없다.' 고등학교 때는 그게 힘들었어요."
(p. 51)
적어도 '상품으로서의 책을 기획하는 능력'이 뛰어난 쪽이 '정혜윤'이라는 개인인지 '푸른숲'이라는 출판사의 누군가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혜윤이 만난 사람들'이 읽은 책들 만큼 '정혜윤'이 읽은 책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온다. 역시나 지난 번 책처럼 제목을 보고 기대했던 내용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글이라는 생각인데 지난 번 책보다는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의 글쓰기 방식엔 여전히 뭔가 반감 같은 게 드는 것이... -_-;;;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리 봐도 블로그 포스트 같은 글인데 이걸 책이라는 형태로 읽고 있는 모양에 내 스스로가 어색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 -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이거 좀, 많이 스놉스러운 거 아냐, 싶어 당황스럽구나 - 말이다.


딴 얘기지만, 정이현이 어릴 때 읽었다는 에이브 전집의 『엄마 아빠 나』란 소설을 나 역시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다. 우리집엔 에이브 전집이 없었지만 피아노 선생님 집에 전권이 있었다 (하긴, 난 이게 '에이브 전집'이었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요즘 학원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때는 특별한 시간 약속 같은 거 없이 무작정 도착한 순서대로 한 사람이 50분 씩 연습을 할 수 있었다. 큰 방, 작은 방에 각각 한 대씩, 딱 두 대 밖에 없는 피아노로 아마도 스무 명은 넘는 것 같은 아이들이 배우자니 때에 따라서는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도착해서 순서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 기다리는 아이들이 읽으라고 (그리고 번잡스레 굴지 말라고 -.-) 마련해 놓은 게 아닌가 싶다. 그 시절엔 피아노는 정말로 죽지못해서 억지로 배우던 거였기 때문에 가끔 나보다 늦게 온 애한테 먼저 치라고 양보(?)를 하고는 남들이 다 치고 가버려서 어쩔 수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야만 할 때까지 그 책들을 읽곤 했었다. 에이브 전집엔 지금 봐도 저걸 애들 읽으라고 끼워 넣다니 좀 심하구나 싶은 책들이 꽤 많았지만, 또 애들이 어떻게 저떻게 읽어낸 걸 보면 나이에 맞는 수준의 책을 읽힌다는 데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어떻게 제 수준에 맞게 해석했다가 커서는 아, 그게 좀 다른 얘기였구나, 하며 멋적어하거나 즐거워할 수도 있으니까. 『엄마 아빠 나』는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지만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책이다. 그걸 읽던 시절엔, 동화(?)의 주인공인 운수 좋은 애들에게 '해피엔딩'이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래 돼서 자세한 내용은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사이가 나쁜 부모님의 이혼을 막아보려는 주인공의 모든 시도가 차례로 실패했다는 건 기억이 난다. 그 중엔, 주인공이 공작(? 미술?) 시간에 만든 멋진 배를 집에다 갖다 놓으면 혹시 부모님이 감동해서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애들은 참 엉뚱한 생각도 잘 하지' 과의 말도 안 되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엔 주인공이 '이길' 줄 알았다. 어떻게 주인공의 부모가 '이혼'을 해?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 부모의 '이혼'에 대한 공포란 애들에게는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다. 어렵게 어렵게 끝까지 읽었더니만 결국 엄마 아빠는 이혼하고 마는 결말을 보며, 행복하고 안전한 결말이 보장되는 아이들의 '동화'에서 아무리 애써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는 책 바깥의 세상이 책 안에서도 재현되는 어들들의 '소설'로 한 걸음 옮겨갔나 보다. 찾아 보니 원제는 『It's Not the End of the World』이고 작가는 Judy Blume이라는 사람이다. 교보의 외서 코너에서 종종 보기는 했는데 표지를 봐서는 훨씬 어린 애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주로 쓰는 줄 알았다.


by 싸락눈 | 2009/09/26 18:00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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