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 벨 훅스 / 이경아 옮김

쓰는 게 몹시 힘들었던 책이라는 얘기가 본문 어딘가에 나온다. 뭐, 그만큼이야 하겠냐마는 읽고 정리하기도 쉽지 않은 책이구나... -_-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있고 그 차이를 설명하는데 '계급'이란 말이 사용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계급 없는 사회'라는 게 세상이 있다고 믿거나 그런 사회에 살았던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계급'이란 말이 유독 무겁고 때로 거북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뭐라고 해야 하나, 서로 다른 계급이 층층이 쌓여있는 피라미드 같은 걸 상상할 때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맨 꼭대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일 아래층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한편으론 깊이 안도하면서 한편으론 또 죄책감 비슷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세상은 한 번도 평등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세상은 사실 평등해야 한다는 당위를 그냥 꿈 같은 소리라고 무시할 수가 없어서다. 의식을 하고 있건 아니건 피라미드에 포함된 사람들은 자기보다 위에 선 사람들에겐 밟히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밟게 된다. 피라미드 구조에서는 언제나, 나를 밟고 있는 사람보다는 내가 밟고 있는 사람의 수가 많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더 이상 밟을 사람이 없는 제일 아래층이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누군가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 앞에서도 인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밟히고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벨 훅스가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도 이거랑 비슷한 걸까? 책머리에 나오는 '왜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잠깐, 정말 그걸 몰라서 물어요? 하고 부루퉁하게 받아치고 싶었다. 물론, 틀렸을 수 있지만 -.-;;;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남자들이 인정하기 오래 전부터 인종, 성과 계급이 결합한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했다. 하지만 언론이 이끄는 주류 문화는 이 세 가지를 동등하게 다루는 급진적인 정치 담론에는 관심이 없다. (p. 20)

부와 권력을 지닌 무책임한 사람들, 특히 정부, 대기업, 언론을 움직이는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의 책임을 떠넘기고 가난한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부르짖는 캠페인의 선봉에 서 있었다. 반면, 부자가 아닌 수많은 국민들도 이에 동조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모욕하려는 의도는 복지 시스템을 겨냥한 계속된 공격과 적절한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각종 게획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탐욕에 물든 부유층과 중산층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경멸을 키우고 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이제는 병리적인 히스테리 현상이 될 정도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생충이며 파괴자라는 생각은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계속 지켜나가도록 이용되었다. 그 결과, 이런 탐욕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생충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p. 65)

안타깝게도 자본주의 문화에서는 부유하든 아니든 소비에 집착하게 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더 심하다. 왜냐하면 미디어나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하위 계급이기에 느끼는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소비뿐이라는 강력한 메시지에 가장 취약하기 때문이다. 광고와 대중문화는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을 사용하면 그들과 같아질 수 있다고 부추기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지금 계급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헛된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잘목된 인식을 가난한 이들이 받아들여 내면화할 경우 그들 스스로 탐욕에 사로잡히고 착취를 자행하게 된다. (p. 67)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비극적인 죽음에 보인 대중의 반응처럼 사람들이 부자에 공감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미국 역사 상 찾기 힘들다. 물론 온 국민이 그녀의 삶과 운명에 집착하는 모습을 계급 제도와 결부시켜 이야기하는 언론은 아무 데도 없다... 언론은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왕족은 아니지만 상류 계급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그녀가 마치 신데렐라라도 된 양 떠들어 댔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특히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계급 없는 사회에 대한 신화를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황태자비를 추모하면서 신데렐라의 환상을 재확인할 뿐만 아니라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환상에도 빠져들 수 있었다. (p. 103)

"모든 것을 쉽게만 얻은 중산층과 특히 중산층의 여자들에게서 종종 특권으로 여겨지는 수동성이 관찰된다. 특권층은 뭔가를 얻기 위해 자신이 직접 싸우거나 노력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간단하게 생각해 버릴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알아서 잘 풀릴 것이라고 말이다. 중산층에 기대되는 규칙만 잘 지키면 모든 일이 잘 되었기 때문에 이런 여자들은 나서기 좋아하고, 교조적이며, 적대적이거나 완고해져야 한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p. 141)

"...만약 우리가 남자들이 가진 것과 똑같은 것을 원한다면 결국에는 남자에게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체제를 옹호하게 될 것이다." (p. 142)

페미니즘의 기본적인 정의는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자들의 착취와 억업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다. 페미니즘과 보수주의를 동시에 표방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근본적인 모순이다. 보수적이며 리버럴한 친가부장적 여자들은 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논점을 흐리고 마치 페미니즘이 모두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개량주의 페미니즘을 주류로 만든 사상가들은 급진적인 이론과 실제를 모호한 것으로 만들려 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가부장제를 지지하는 세력들과 결탁한다. 그들의 목표인 페미니즘 운동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이미 '포스트 페미니즘 post feminism' 단계에 와 있으면 자유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하에서는 기존의 계급 구조 내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반페미니즘적인 공공 정책은 페미니즘 운동으로 획득한 권리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백인 인종주의를 지지하는 자본주의 가부장제와 결탁해 계급 특권을 획득한 여자들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p. 147-8)

"미국 흑인 여자의 무주택 상황은 평들을 추구하는 백인 여자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특히, 젊은 백인 여자들은 집이 필요하다. 만약 독립적이며 남자와 같이 살지 않는다면 당신만의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백인들 중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 "러피(luppie, 전문직에 종사하는 레즈비언)들은 파리 한 마리 죽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스페인 할렘'에 아파트 한 채만 있으면 된다. 내가 아는 페미니스트 의사는 브루클린에 이사를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이 '화이트 토네이도'에 편승해 그곳에 살고 있던 유색 인종 여자와 부양가족들을 거리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p.184-5)

서구의 여자들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지구 어딘가에서는 여자들이 노예처럼 일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을 부정한다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자국의 자본주의 체제와 전 세계 자본의 관계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인류의 반은 여자이다. 인류 전체 노동의 3분의 2를 담당하고 전체 소득의 10분의 1을 받지만 소유 재산은 지구 전체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서 최고 극빈층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한다면 인종, 계급과 성이 서로 실타래처럼 얽힌 상황을 더 정확하기 직시할 수 있다. (p. 214)

앞으로도 내가 충실하게 연대해야 할 계급은 노동 계급이다. 아니, 돈은 우리의 행복을 높여주는 만큼만 쓸모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계급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부가 재분배되는 날이 꼭 찾아올 것이다.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경제 정의를 위해, 누구나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소유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다시 한 번 똘똘 뭉치는 날이 꼭 찾아올 것이다. (p. 218)


노동 계급 출신이라는 벨 훅스의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읽으며 '아이구, 우리 마님이랑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_-;;; 우리 마님도 남편한테 받는 쥐꼬리만한 돈을 아끼고 아끼고 아껴서 남한테 궁색해보이지 않기 위해서 정말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살았다 (는 사실을 좀 늦게 알게 되었다). 우리 마님의 남편도 참, 어쨌든 제가 번 돈을 가족이랑 나눠쓰는 걸 싫어했다. 어렸을 때 피아노 레슨 가기 싫다고 징징댈 때면 피아니스트 시킬 것도 아닌데 왜 쓸데 없는 돈을 쓰냐고 성질을 부리곤 해서 내 편을 들어주느라 그러나 하고 좋아하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다달이 나가야 하는 레슨비가 아까웠던 거로구나 하고 알 수 있다 -_- 어쨌든 마님의 자존심과 노력 덕택에 우리 자매는 결코 부잣집 자식이 아니었는데도 그때 살던 소도시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던 이름 있는 브랜드의 옷을 입고 다녔고 들고 다니던 학용품 같은 것도 남들보다는 좀 비싼 것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 선생들 중에서 우리 집이 꽤 사는 줄 알고 은근히 밥이라도 한 번 사길 기대하고 찔러보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그 시절의 마님은, 우리가 사실은 소위 '중산층'에도 들기 어려울 만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고 마님의 자존심은 허세일 뿐이라는 얘기 같은 거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은 복지는 개인들의 성취욕과 성취감을 저해할 뿐이고 우리 나라의 실정에는 절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어떤 선배가 한 번은 '락눈이는 직업이 그래서 자기가 속으로 뭐라고 생각하든 어쩔 수 없이 부르주아'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이것저것 집어 읽어 봐야, 블로그 따위에 끄적거려봐야, 기껏해야 놀림거리 (강남엔 살아본 적이 없다만) '강남좌파 (후보)'일 뿐이고 결정적인 순간이면 어쩔 수 없이 내 계급의 이익을 위해 지금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일을 하는데 망설이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다면 온 우주가 내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움직이려...나? 설마 그럴 리가 -.-;;;

일부의 '진보적인 특권 계급 사람들'이라는 예외를 두고는 있지만, 벨 훅스의 관점에서 특권 계급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 따위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는 부도덕한 사람들이다. 그 말이 맞을 거라고 수긍하고 있다 (쿨럭). 같은 계급이 사람들 내에서는 참으로 점잖고 좋은 사람으로 통하는 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하는데 경악한 적이 몇 번은 있다 보니... -_- 그런데 사실은, 특권 계급의 부도덕성에 대해서 별 의심이 없는 것과는 별도로 하층 계급의 도덕성이 그보다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은 또 하지 않는다. 나만 빼면 세상은 다 더러워... 라는 유치한 결론인가 싶어서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또 이게 뭐라고 해야할지 또... 횡설수설이로구나 (사악한 빈민이라는 개념을 처음 받아들였던 게 『레 미제라블』의 테나르디에 씨를 통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또 잠시... -_-). 어쨌든, 책 전체 마지막 문단의 "언젠가 부가 재분배되는 날이 꼭 찾아올 것이다.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경제 정의를 위해, 누구나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소유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다시 한 번 똘똘 뭉치는 날이 꼭 찾아올 것이다" 는, 좀 뜬금없고 지나치게 나이브한 게 아닐까 싶었다. 이런 생각 자체가 이미 그 '계급적 편견'에 해당하는 것이려나? 복잡하다.

두 번을 읽었다. 사실 처음 읽고나서의 느낌은 '뭔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 -_- 이었고 두 번째 읽고 나서도 그 결론이 너무 나이브하고 비현실적이라는 갱각을 떨칠 수 없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은 부분은 쉽게 읽혔고 그렇겠구나 싶은 공감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지만 제목에서 기대한 중량감에는 미치지 못했고 '계급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다른 부분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읽었지만 역시 너무 짧고 두리뭉실하다는 인상이었다. "Where we stand: Class matters"를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옮겨놓은 제목을 꽤 좋아했었는데 책을 다 읽고나니 내용의 일부를 반영하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나치게 드라마틱하고 지엽적인 제목이구나 싶다. 원래의 제목 역시 비교적 가볍고 얕게 접근한 내용에 비해 지나친 기대감을 주는 것 같다. 하긴, 같은 작가의 『행복한 페미니즘』도 잘 읽기는 했지만 결론을 내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부분은 역시 나이브하다 싶은 감이 없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보면 '결론'이나 '대안'이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보니 또 어쩔 수 없지 않나 싶지만 말이다.

by 싸락눈 | 2008/10/30 22:29 |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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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페미니즘, 당신의 계급을 묻다
페미니즘, 당신의 계급을 묻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정안나 벨 훅스의 에 크게 공감한 기억이 있어 이 책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계급”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신분제 사회가 아닌 한국에서 무슨 계급?’이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여러 상황들-부와 출생의 차이를 통해 고착화되는 주거와 교육, 건강-을 본다면, 단연코 한국은 계급의 심화를 걱정해야.....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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