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비, 정령, 도둑

석 달 전쯤 해서 살림살이를 좀 규모있게 해보자고 결심한 뒤로 한동안 꽤 성공적으로 자제하며 지내왔다. 책이든 CD든 DVD든 장바구니에 넣고나서 절대로 그 자리에서 결제하지 말자고, 일단 일주일 정도 숙성(?)을 시킨 다음 그래도 그 책/CD/DVD를 사야겠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 때 사자고 말이다. 그리고 난 뒤로 카드값이 한 40% 정도는 줄어었다는 사실이 그 전의 지름 생활이 얼마나 실속 없고 즉흥적이었는지 증명해주고 있다 -,.-;;; 책 값보다는 CD와 DVD, 특히 DVD에 쓰는 돈이 확실히 줄었는데 음악이나 영화보다는 그래도 책이 더 만만한 사람이라 그러려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지름 생활이려니 하고, 꽤 흡족해 하고 있다 :-) 물론 가끔씩 사고를 치는 날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지난 목요일 오후의 지름이 사고였다는 건 또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안나 왈렌베르이를 아마존에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가능한 철자들을 조합해서 이름으로 찾아보려다가 실패했다.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의 이름들은 확실히 낯설다. Anna Wahlenberg, 찾고나서 보니 왜 한 번쯤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싶은데 말이다. 그리고 나서 '스웨덴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 라는 계몽사 『북유럽동화집』의 소개를 근거로 'Swedish fairy tale' 이라는 키워드를 넣었는데 처음에 나온 게 이 책 『Swedish Folk Tales』였다. 왈렌베르이의 작품들이 몇 개 실려있는 건 확실하지만 「눈물의 진주」가 포함됐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마존의 에디터 리뷰나 독자 리뷰에선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구글에서 찾은 어느 페이지에선가 '눈물이 진주가 되는 이야기' 라는 말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지만, 설령 그 작품이 실려있지 않더라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림이, 그림이 너부 이뻐... ㅠ_ㅠ)b 표지의 그림만 보고도 홀딱 반해버렸는데 여기서 다른 그림들을 구경하고는 그냥 사야겠다 해버렸다.



언젠가 한 번, VHS 테잎이라도 살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지난 주에 DVD가 나왔다. 새삼 IMDB를 뒤져보니 1994년 영화다. 우리 나라 개봉이 빨랐나 보다. 내 기억도 그 때쯤, 중간 고사가 2주 정도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동숭에서 저녁 상영으로 보았던 것 같다. 동생님이 들고 들어온 씨네 21의 기사를 보고 보러 가겠다고 결정했다. 별달리 홍보를 많이 한 영화는 분명 아니었는데 (요즘처럼 인터넷이 흔했던 것도 아니고) 극장 안이 꽉 차 있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이라니, 정말 쥐 죽은 듯 조용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만큼 기침 소리 하나도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주 가끔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장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영화는 슬프고 무거웠다. 극장을 나서며 어디, 아무데라도 들어가서 한참 동안, 그냥 주저않아 있고 싶었다. 느슨하게 연결된 세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DVD 자켓에 나온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비아냥의 의미 없이) 가장 소녀 취향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다시 보면 어떤 마음일까?



이건 자주 들르는 모 게시판 주인장의 취향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 -.-;;; 한 마디 덧붙이지면, 『판의 미로』이후로 지속된 스페인 내전에 대한 관심도 일조를 했고.

여기까지가 지난 목요일에 질렀고 어제 발송 확인 메일을 받은 물건들.



그리고 이건, 『Before the Rain』을 장바구니에 넣었더니 요것도 같이 사면 어떻냐고 아마존이 들이댄, 역시 지난 주에 새로 나온 DVD. 알고 그런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여우같기도 하지! 하는 탄식을...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가 최고의 영화 프로그램이었던 어느 머언 옛날 TV 에서 두 번을 봤던 영화다!!! 어린 눈에도 정말 잘생겼던 타지 왕자, 너무너무 예쁜 야스민 공주, (와, 이름들이 다 생각난다!), 그 때는 그 매력을 정당하게 평가해주지 못했던 바그다드의 도둑님(?), 이번 말고 다음 번에, 다음 번에는 꼭 질러 주리라 다짐하며 일단 보관함에 넣어 두었다.

by 싸락눈 | 2008/06/28 14:59 | 별일도 별것도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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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ari at 2008/06/30 10:40
40%나 줄었다니 도대체 얼마나 즉흥적이었던 거여요? ㅎㅎㅎ
일러스트 정말 예쁘네요 !!!! ㅠ_ㅠ
Commented by 싸락눈 at 2008/07/05 13:36
ㅎㅎ 사실 첫 달엔 딱 한 권인가 밖에 안 사기도 했어요.
요즘은 뭘, 그렇게까진 안 해도 되잖아 하고 좀 느슨해졌지만요.
예전엔 제가 생각해도 좀 심했어요 -///-
Commented by 200문장영어 at 2008/07/02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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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싸락눈 at 2008/07/05 13:38
신청할 생각은 없지만 기념으로 보관.
이 블로그에서 물건을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차라리 고맙다고 해야할 것 같기도 하고... -.-;;;
Commented by 키크는아이 at 2008/07/0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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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ari at 2008/07/08 22:36
ㅋㅋㅋ 두번째 달린 건 좀 웃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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