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강아지

이것은 내 자전거가 아니다.

세발 자전거가 아닌 자전거를 처음 타 본 건 중학교 때였다. 노는 날이었는지 토요일 오후였는지, 빈 운동장에 아이들 몇 명이 남아서 수위 아저씨가 짐 실을 때 쓰는 자전거를 갖고 놀 기회가 있었다. 누구였는지 그 나이 또래치곤 어른들과도 꽤나 스스럼없이 지내던 아이 하나가 자전거를 비렸던 것 같다. 평소에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편도 아니었고 오히려 살짝 무서워하던 -.- 애들이었는데 그 날 오후는 좀 이상한 날이었다. 자전거를 잘 탈 줄 아는 애들도 나처럼 처음 타보는 애들도 묘하게 조화로왔다고 할까, 어쨌든 서로 기다려주고 이렇게 타라고 조언해주고 뒤에서 붙잡고 따라가다가 슬며시 놓아주었다가 "너 지금 혼자서 타고 있어" 하고 알려주고, 수위 아저씨가 자전거를 다시 찾아갈 때까지 그렇게 놓았다. 졸업할 때까지 그 아이들과 그렇게 스스럼없이 어울린 일은 다시 없었고 수위 아저씨의 자전거도 다시 타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꽤 강렬했고, 단 몇 분이었지만 "너 지금 혼자 타고 있어" 라던 증언과 '자전거는 한 번 배우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던 속설에 기대어 누가 "자전거 탈 줄 아세요?" 하고 물을 때마다 수위 아저씨의 짐 싣는 자전거를 떠올리며 "네, 조금요" 하고 대답하곤 했다. 사실은 고등학교, 대학을 마칠 때까지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으면서 말이다 :-)

앤 아버에서 잠깐 하숙 비스무리한 생활을 두 달 정도 하다가 내 아파트로 독립해 나가자마자 자전거를 사기로 마음 먹었다. 길어야 2년이면 떠날 예정인데다가 체감환율이 $1=\10,000 이던 시절이라 $80-100 을 하던 새 물건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누가 이사하면서 팔고 가는 중고 자전거를 노리기로 했다. 결국 어느 중국인 아줌마의 자전거를 $25 주고 사는데 성공했다. 그 아줌마 말이 별로 타보지도 못했다고, 그래도 아까와서 비 맞을까봐 실내에 보관하던 물건이라고 했고 아닌 게 아니라 중고치고는 굉장히 깨끗하고 새것처럼 보이기에 내심 꽤나 흡족해했다. 까마득한 토요일 오후의 기억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타 보던 날, 그날 그 애가 거짓말을 했거나 저전거도 오래 안 타면 잊어버리나 봐 하고 조금 실망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우아하게 장을 보러 다닐 그 날을 위해, 또 버스 시간 맞추기가 귀찮아서 두 번 갈 걸 한 번 가고 말아버리는 반즈앤 노블을 자전거를 타고 다닐 날을 생각하며 몇날 며칠을 연습을 한 결과 아파트 단지 안을 그럭저럭 타고 다닐 만큼 익히는데 성공했다. 역시 자전거는 한 번 배우면 안 잊어버리나 봐! 하고 살짝 기고만장한 기분에 젖기도 했고 :-)

그럼에도 자전거를 큰 길로 끌고 나가는 건 무서웠다. 앤 아버는 작은 도시였고 젊은 학생들이 많어서인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자전거 도로도 잘 갖추어진 편이었다 (그랬나? 그랬을 거다. 서울에서 가끔 보는 도로들처럼 선명한 갈색 포장은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단지 바깥으로 타고 나가기가 무서웠던 이유는 브레이크를 사용해서 자전거를 멈추는데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핸드 브레이크를 힘껏 눌렀는데도 멈출 때까지 움직이는 거리가 꽤 길었다. 급한 마음이 들 때는 그냥 자전거를 옆으로 눕혀서 발로 땅을 딪기도 했는데 그래도 단번에 멈추지는 않고 몇 걸음을 크게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이러다 보니 길에서 움직이는 차나 사람을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잘 피해가거나 부딪치지 않게 정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때는 내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 ㅠ_ㅜ 반응이 좀 느리구나 하긴 했지만 자전거가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아는 자전거라곤 중학교 때 한 번 타봤던 짐자전거 뿐이었으니 비교의 대상이 없었던 거다. 그냥 내가 아직 서툴러서 그런 거겠지,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완전 바보... 흑. 그래도 단지 안에서는 운동 삼아 열심히 타고 다녔는데 어느날 아침 보도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턱에서 당황해서 핸들을 잘못 돌렸다가 그대로 콰당! 하고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앞니가 조금 부서졌고 ㅠ_ㅠ 한쪽 뺨에서 턱까지 아스팔트에 쭈욱 갈린 상처가 났다. 피부의 상처야 깊지 않은 편이어서 씻어주고 약바르니 왕성한 상피 재생 능력이 알아서 해주었지만 앞니는 뽑아버리고 임플란트라도 해주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보니 아직도... 흑흑. 넘어지고 나니 자전거 타기가 무서워졌다. 단지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시들해져서 스탠드에 묶어두고는 그냥 쳐다보며 왔다갔다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비가 오거나 말거나, 눈이 오거나 말거나 계속 그렇게 묶어두다 보니 녹이 슬고 낡아가는 게 눈에 보이더라. 그냥 내버려뒀다 -_-

서울로 돌아왔고 자전거를 탈 기회는 없었다. 요즘엔 서울에도 자전거 도로가 많이 생겼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게다. 사실 돌아오고나선 집 앞에 묶여있는 자전거를 볼 일도 없다보니 거의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제주도에서 학회를 한 적이 있었고, 같이 갔던 후배들이 호텔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그때의 공포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에 처음엔 싫다고 하다가 또 남들 타는 게 하도 재미있어 보여서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고 그럼 나도 하고 탔다가, 광장에서 놀고 있던 한무리의 어린애들이랑 부딪칠 것 같은 상황에서 공포에 질려 "비~켜!!!" 하고 비명을 지르며 브레이크를 잡는데 어, 이게 웬일이야? 자전거가 바로 서 버리네!!!!!
┐(  ̄ㅁ ̄)┌ ... ... ...\(´ ∇`)ノ
그 날 그 바닷가를 자전거를 타고 광년이처럼 (쿨럭) 달렸다. 언제든지 멈출 수 있다는 걸 아니 속도를 내는 게 무섭지가 않았다. 나는 바보였어, 브레이크란 당연히 이렇게 작동하는 게 아니겠어? 왜 그 자전거가 고장난 물건이었다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한테 그 자전거를 판 아줌마도 브레이크가 원래 그런 건 줄 알았을까? 그랬겠지, 별로 타보지도 않았대쟎아.

지난 주에 과 야유회를 남이섬 근처로 갔었다. 섬에 들어가면 꼭 자전거를 빌려 타야지 하고 있었는데 결국 섬에는 못들어가고 근처의 리조트에서 밥 먹고 물가에서 좀 놀다가 돌아왔다. 사진의 자전거는 리조트에서 누군가가 식당 옆에 세워두었던 걸 찍은 것. 수줍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빠숑리더인 J 양의 다리가 찬조출연.

역시 야유회 갔다가 물가에서 만난 개 (아마도)가족. 앞에 강아지 두 마리는 형제인 것 같고 뒤는 엄마? 셋이 참 닮았다. 밤새 충전한 카메라를 책상 위에 두고 가는 바람에 무려 DSLR 이라는 동료의 카메라로 일반 렌즈와 망원 렌즈를 바꿔가며 찍어볼 수 있었다. 이건 일반 렌즈로 찍어서 거리는 좀 있지만 이 날 찍은 사진 중에서 제일 맘에 들어. 같이 갔던 사람들이랑 돌려보며 유전자의 위대함에 대해 명상... 은 아니고 그냥 정말 닮았네 하며 깔깔거렸다. 찍어도 찍어도 질리지가 않아서 그만...

by 싸락눈 | 2008/05/03 10:32 | 별일도 별것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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