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의 책들

이 제목으로 올리는 글이 네 번째다. 안 쓰고 있으려니 묘하게 갚아야 할 빚이라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버려서... -_- 작년에는 별로 기억에 남는 책이 없는 것 같아서 픽션이고 논픽션이고 열 권이나 추려낼 수 있으려나 했는데 그래도 꼽아보니 그보다는 더 되는구나. 처음으로 논픽션 고르기가 픽션 고르는 것보다 수월한 해다. 기대가 컸던 소설들이 모두 원하던 것보다 2-5% 정도 부족한 느낌? 이라고 해야할지, 책장을 덮으면서 '이 책이야말로 '올해의 책'이로군' 이라고 할 만한 게 없어서 아쉬웠다.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며 그림 모아다가 크기 조절해서 포샵질까지 끝낸 파일을 들여다보다가 『카탈로니아 찬가』를 픽션이라고 해도 되는지 의문이 생겨버렸다. 아마존에서는 어쨋든 Literature/Fiction 으로 분류하고 있고 파일을 다시 만드는 건 몹시 귀찮은 일이니 (<-이게 더 중요한 이유) 그냥 픽션인 셈 쳐야겠다 -_-;;;



Fiction

『The God of Small Things (Arundhati Roy)』는 올해 1월까지 읽었던 소설이지만 어쨌든 시작은 작년이니 '지난 해의 책'으로. 작품보다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던 경우였다. 왜 어떤 이들은 명백한 죄를 짓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데 다른 이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변명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무의 어린 쌍동이들이 자라고 어른이 되어가던 세월들, 침묵과 공허 밖에 없는 시간들을 상상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작정하고 묘사한 것 같은 인도 사회의 종교, 계급, 정치, 경제적인 문제들을 읽으며 새삼스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복잡하구나, 힘들고 가끔은 끔찍할 때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로이는 다시는 소설을 쓰지도 않을 것이고, 절대 『작은 것들의 신』의 영화화를 허락하지도 않겠다고 한다. 소설의 서문과 인터뷰들을 찾아 읽으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Stardust (Neil Gaiman)』, 동명의 영화를 먼저 보고 딱 영화에서만큼의 유쾌함을 기대하며 읽었다가 정말 오랜만에, 뜻밖에 맘에 드는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으레 기대하는, 어느 정도 관습적인 장치들이 거의 그대로 다 나오면서도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구나 하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결말이, 정말 멋지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의 다른 작품들을 꼭 읽어보고야 말리라 결심(만)한 지가... 반 년이 넘었다는 사실은 좀 아쉽고.

『Atonement (Ian McEwan)』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역시 1부의 집요한 심리 묘사이다. 별 사건도 없는데 읽다가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에 얼마나 더 읽어야 하는지 남은 페이지 수를 체크하곤 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뭔가 담벼락이 무너지는 것처럼 충격이었고 사실은 살짝 배신감조차 들었던 결말도 다시 생각하니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싶다. 그럼에도, 아무리 요즘 소설에 해피엔딩이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다지만, 구닥다리가 주는 만족감도 만만치 않은데 한 번만 봐주면 안되겠냐고 땡깡 비슷한 걸 부려보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도. 이야기 자체는 사실 살짝, 아주 살짝, 뭔가 불쾌한 '아랫맛' (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경우엔 '뒷맛'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뭔가 읽는 내내 따라다니는 '맛' 이라서) 을 남기기도 했다.

『The Tiger in the Well (Philip Pullman)』은 풀만의 'Sally Lockhart' 시리즈 중에서 가장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굉장히 재미있고 시간을 들여 읽는 게 아깝지 않은 소설이지만 여주인공이 겪는 수난이 워낙 그럴 듯하다보니 찌질한 가해자의 유들유들함에 분통이 터져서 중간에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함께 영국의 사회주의에 대한 작가의 뭔가, 절절한 애정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단, 좋아하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여주인공과 연애를 하는 인물들에 대한 캐릭터 설정은 언제나 좀 모자라거나 지나치다 싶다. 시리즈의 전편들인 『The Ruby in the Smoke』나 『The Shadow in the North』의 프레드릭 갈란드의 캐릭터는 그가 죽어버릴 때까지 내내 뭔가 부족한 느낌이더니 『The Tiger in the Well』의 다니엘 골드버그는 차고 넘쳐서 느끼해 죽을 지경이다. 넘치는 것보다는 언제나 좀 부족한 게 차라리 낫다.

새삼스레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재작년 말에 본 영화 『판의 미로』의 영향이 컸다. 『Homage to Catalonia (George Orwell)』를 읽으면서, 옳다고 믿는 일에, 또 사실 옳은 일에 조건 없이 모든 것을 걸었다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러나 그 사람들 - 올바르고 열정적인 개인들 - 은 싸움에 졌고 많은 이들이 비참하게 죽거나 도망쳐야 했다. 옳은 이들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가슴이 묵직해진다. 그러나 그때 싸움에 이겼다는 사람들도 지금은 없다는 걸,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결국 『카탈로니아 찬가』와 같은 기록이라는 걸 떠올리며, 새삼 '기록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옳은 이들은 이기지 못하더라도 그냥 지는 것은 아닌가보다. (그나저나 작년에 사둔 오웰의 책들은 하나도 못 읽었다 -_-)

르 귄의 에세이 「Fisherman's Daughtor」를 읽다가 『Little Women (Lousa May Alcott)』을 다시 읽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어릴 때 읽다가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책들은 늘 그렇듯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 그렇게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 지금은 그냥 평범하거나 '아, 애들 즐거우라고 넣어줬구나' 싶을 때가 있고 그때는 지루해서 얼른 넘겨버렸던 부분이 제일 흥미로울 때가 있다. 어릴 적 읽으면서 조가 싫었던 이유는 '남자로 태어났다면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에 나갔을 텐데 여자로 태어나는 바람에 집에 앉아 양말이나 깁고 있다' 고 투덜거리거나 평범한 '소녀의 로망'을 쫓으려는 에이미를 제일 가혹하게 구박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 시절 에이미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냥 그 애가 제일 예쁠 것 같아서였다 -.-;;; 금발에 파란 눈, 하얀 피부라는 묘사는 만화책으로 익힌 서구식 미의식에 푹 빠져있던 어린애의 상상에서 눈부신 미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사실 에이미가 그리 미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 이 나이를 먹고 다시 읽는데도 조는 좋아하기 힘들다. 그렇지, 거기까지가 이 시절의 한계였겠지, 똑똑하고 지적인 여자를 그리고 싶지만 오래된 시스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인물은 또 부담일 테니까. 그 시스템 안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상상력엔 시스템이 규정한 한계가 있는게 당연하잖아. 나름대로 이해하려들면 그럴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마치 고모에게 물려받은 저택에 바에 교수와 함께 학교를 만들거라고 얘기하며 '난 남자애들이 좋아, 남자애들을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한 명은 잘 키워 놓았잖아?' 라며 로리를 바라보는 장면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다시 한 번 재수없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_- 차라리 노력하는, 선량한 속물이 되는 게 목표라던 에이미 쪽이 여전히 좋다.

『Penelopiad (Margaret Atwood)』는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책. 지금까지 읽어본 애트우드의 다른 책들에 비하면 뭔가 많이 부족하다 싶지만 그냥 넘어가기는 또 좀 아쉬운 책이다. 뭐, 순전히 내 눈에 뭐가 씌어서일 수도 있다... 쿨럭.

『달려라, 아비 (김애란)』는 그야말로 아무 기대없이 읽었다가 뜻밖에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여기저기 칭찬이 자자한 (지나쳐서 오히려 꺼리게 만들지 만들지 않나 싶을 정도) 책이고 작가였음에도 좀체로 마음이 가지 않았던 이유가 사실은 '아비'를 찾는 제목이 그냥 싫어서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다. 두 번째 소설까지 나왔는데 앞으로 지켜볼 생각이다. 




Non-Fiction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작년에 읽었던 책들 중 가장 인상적이거나 좋았던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이 책이다. 일 년 동안 읽은 책들 중에서 논픽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건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다. 어린 아들의 질문에 아버지가 대답하는 형식이라는 얘기에 처음에는 좀 뜨악했다. 단순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묵직하고 복잡했다. 직접 보고 듣고, 그렇게 보고 들은 것들을 또 깊이 생각한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그런 말들이었다. 읽고 나니 무언가 행동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한 게 있는 건 아니지만... (다달이 내는 기부금의 액수를 조금 늘렸고 후원을 부탁한다는 전화들을 조금 친절하게 받았던가) -_-

『Cosmos (Carl Sagan)』도 굉장히 좋았던 책. 아주 랑만적이고 낙관적이다. 가끔씩 이런게 필요하다. 조금 더 젊었을 때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빼면 무지무지 좋았다고 할 수 있다 :-) TV 시리즈를 언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마존에서는 아직도 꽤나 비싸게 팔리고 있다.

『Dancing at the Edge of the World (Ursula K. Le Guin)』 르 귄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부르며 쓴 글을 읽는 걸 좋아한다, 언제나. 하지만 날카롭다가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살짝 너그러워지는 것 같은, 결코 '서슬이 푸르다'에는 닿지 않는 느낌이 살짝 아쉽기도 하다. 낙태에 관한 개인적 경험에 관한 글, 『 The Left Hand of Darkness』에 대한 작가 자신의 생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밝히는 글, 『 Little Women』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그것들이 씌여진 환경, 여자들이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한 오래된 편견에 대해 풀어놓은 「Fisherwoman's Daughter」 같은 글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도리스 레싱의 SF 에 대한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리뷰들을 읽었던 것도 생각나는데 어떤 책에 대한 것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지난 15년 간 레싱의 쓴 것들을 가치 없다고 가차없이 비판한 모 비평가 덕에 '대체 어떤 책들이기에' 하는 쓸데없는 호기심이 잠시 생겼다, 사라져갔다.

『 춤추는 죽음 (진중권)』 이것도 읽기가 즐거웠던 책. 쓰는 사람도 즐거웠을 것 같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세상이, 적어도 한국 사회가 이성적으로 착착 돌아가며 미워할 것도 화 낼 일도 없는 그런 상태에 도달한다면 진중권 씨는 온갖 '-빠' 또는 '-까'들과의 전쟁에 투자하던 시간을 이런 책들을 쓰는데 쓰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그가 전쟁을 위해 쓰는 글들을 읽는 것도 즐겁긴 하다만...

『Against Our Will (Susan Brownmiller)』은 30 년 전에 처음 나온 책이라지만 지금 읽어도 그리 낡지 않았다. 하긴 이 동네 얘기들 중 세상이 달라졌으니 이젠 폐기해도 좋다고 할 만한 게 나오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그래도 세상은 느리지만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그렇게 믿어도 될까? 사실은 그렇게 믿는다. 그렇다가 가끔 지나치게, 근거도 없이 낙관적인 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때가 있지만.

『오늘의 세계적 가치 (브라이언 파머)』 우리가 사는 세계의 가치 또는 문제들은 너무 크고 너무 다면적이어서 보고 있어도, 함께 살고 있어도 제대로 보고 또 알고있는지 스스로를 믿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그게 다른 사람들은 어떤 면을 보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가 계속 궁금한 이유이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언제나 읽는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었고, 그 책에 담긴 이야기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달라졌고 어떤 다른 일을 하려 하는가? 대개의 경우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가 대답이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나, 보통 이런 생각은 스물 갓 넘긴 풋풋한 아해 시절에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도 늦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on_ )

『만들어진 신(리차드 도킨스)』도킨스의 종교에 대한 생각은 나와 거의 같다. 그와 나와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소리를 하기 위해 500 쪽이 넘는 책이 한 권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신기하기조차 하다. 솔직히 말하면, 신, 특히 유일신과 그 존재로부터 얻는다는 구원을 믿는다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진정으로 평화롭게 함께 살아간다는 건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가끔씩 다 괜찮으니 자기들의 '창조론' 이니 '창조과학'이니 하는 아방한 소리만 하지 말아주었으면 할 때도 있고... -_- ('론[論]'도 아까운데 '과학'이라뉘, 췟). 언젠가 이 책이 별 가치 없는 주제에 대해 지나치게 길게 쓴 글이라고 비판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바래본다. 아직은 그런 날이 아니기에 『만들어진 신』은 일단 용감한 책이다. 도킨스 옹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

『 벼랑에서 살다 (조 은)』지금은 조은의 책은 다시 읽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처음 읽을 때는 좋았다. 계속 좋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 아쉽구나.





by 싸락눈 | 2008/02/10 14:11 | 책을 읽고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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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ari at 2008/02/20 01:38
지글러 책 샀어요. 어서 읽어보고 싶네요.ㅎㅎ 작은 것들의 신은 한국어 번역판은 아무래도 재미가 덜 하겠는지요? 영문판은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들 것 같아서 ^^a
Commented by 싸락눈 at 2008/02/21 07:36
사실은, '작은 것들의 신'은 기대가 워낙 커서인지 2%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ㅠ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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