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os - Carl Sagan


처음엔 도서관 지하의 헌책방에서 발견하고는 $1에 구입한 80년도 판을 들고 다니며 읽기 시작했다. 좀 크고 그만큼 무게도 나가지만 어차피 먼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도 아니고 가방도 큰 걸로 들고 다니고 있으니까 그럭저럭 괜찮을 줄 알았다. 100 여 페이지를 읽은 시점에서 항복 -_- 했다. 요즘들어 유난히 노트북을 들고 나갈 일이 많다보니 둘의 무게를 한꺼번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전에 쓰던 첫 번째 노트북의 액정이 깨진 이유가 무거운 책과 같은 가방에 넣어서 들고 다닌 까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안해서도 둘을 같이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좀 작은 책으로 사서 들고 다녀야지 하고 주문한 게 가운데 번역판. 보급판 원서가 굉장히 작고 가볍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똑같은 내용의 책을 또 구입하는 게 망설여져서 기왕 또 사는 거 한글판으로 사야지 했었다. 받아보니 또 생각보다 크다. 무게는 훨씬 가겹긴 하지만 역시 지하철 기다리면서 손에 들고 읽기엔 부담스러웠다. 결국 제일 위의 영문판까지 샀고 큰 책에서 읽다 남은 부분은 이걸로 마저 읽었다. 한때는 하드커버를 유난히 좋아하고 포켓판을 너무 싫어해서 가격이 어찌 되었건 하드커버부터 집어들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아지고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책은 무거운 책'이라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세상에 나온지 이미 30년 가까이 되는 책이니 이 책에서 다루는 분야를 깊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시대에 맞지 않거나 오류로 판명난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외한이지만 지식이나 정보의 측면에서라면 사실 아주 새로운 내용은 찾기 힘든 책이다. 일요일 아침 TV의 '우주의 신비' 다큐멘터리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과학 특집 기사 같은 것들만 가끔 찾아 읽어도 결코 낯설지는 않은 내용들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에겐 좀 아쉬울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이 책의 정보가 지금까지도 얼마나 정확한지를 신경써야 하는 사람이 아니다. 화성의 붉은 하늘이니 목성의 고리니, 물이 있을 것 같은 행성이나 어떤 행성의 대기가 무엇으로 이루어졌고 온도가 얼마나 높거나 낮은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오래 남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고 기분 좋은 것은 책 전체에 깊이 배어있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에 대한 신뢰, 지극히 낙관적으로 보이는 글쓴이의 태도였다. 이런 신뢰와 낙관이 30 년 전의 것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30 년 전의 사람들이 안아야 했던 30 년 전 세계의 문제들에 대한 중압감이 꼭 현재의 우리가 느끼는 우리 시대의 문제에 비해서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고 때로는 비합리적인 충동들이 이성보다 앞서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과학보다는 미신이 더 편하고 믿음직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제자리 걸을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세이건의 온화한 주장에 진심으로 동의를 하게 된다 :-) 같은 말을 하면서도 좀 더 센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리차드 도킨스도 좋아하지만 세이건의 부드럽고 온건한 말투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겨우 63 세에 세상을 떠났다니 아쉽다. 게다가, 대폭발 이후 우주를 채우고 있던 가스와 먼지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작고 푸른 행성 지구를 만들었고 같은 물질에서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후 길고 긴 진화의 길을 지나 오늘의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 코스모스와 별과 우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결국은 같은 물질이라뉘, 랑만적인, 참으로 낭만적인 생각이다!!! 아니아니, 이게 그냥 생각이 아니라 부족한 인간이 지닌 가장 훌륭한 도구, 과학으로 증명된 사실이라니 곱절로 더 멋지다!!!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고도 별이 될 수 있... 쿨럭쿨럭)


머리 모양은 촌스럽지만 - 흑, 2:8 가르마라뉘... - 웃는 모습이 꽤 근사하다. 먼 옛날 학교 다니면서 이 사람이 아내인 앤 드루이얀과 함께 쓴 『읽어버린 조상의 그림자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를 읽은 적이 있다. 세이건의 책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 두 권 밖에 없구나 -_-;;; - 책 내용 사이사이에 과하지 않으면서 자기 아내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아내더러 미인이라고 하면 처녀 적에는 괜찮았지만 지금은 볼품없다고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애처가로 불리기도 한다. 아니, 그가 애처가인 것은 맞을 것이다. 그런 식의 겸손은 그저 사회생활의 기술일 뿐 실제로는 자기의 배우자를 깊이 존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외모에 대한 칭찬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심지어 그런 중요하지 않은 가치로 아내가 평가되는 것이 불쾌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랑하고 존종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당연스레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여기지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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