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생뎐 - 이현수


이 소설을 좋아할 수 없다. 특별히 트집잡을 만한 점은 없다. 문장도 나쁘지 않고 소재도 신선하다면 뭐, 신선한 편이고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도 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다.

무어라 감싸고 치장해도 '기생'이란 존재의 가치를 인정할 수가 없다. 기생이이 춤을 추든 노래를 부르든 그 어떤 종류의 예술을 하든 그들의 존재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다. 뭐라고 변명(항변?)을 해도 기생은 어느 한가한 남자들의 소위 풍류(? )라고 하는 심심파적을 위한 존재이다. 대등한 사귐의 대상도 아니고 예인으로서 존중을 받는 것도 아니다. 한쪽이 한쪽을 멸시하고 낮추어보면서도 그 존재를 적당히 즐기는 관계, 멸시당하는 쪽도 별 저항없이 그런 관계를 받아들이며 다른 걸 얻으려한다. 그런 삶이 그래도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주장하는 개인이 있다면 뭐라 할 생각은 없다. 어떤 삶에서도 빛나는 순간, 소중한 기억은 있을 수 있겠거니...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 속 부용각의 오마담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그 생애를 거쳐간 수많은 남자들을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기생집 '부용각'과 '부용각'이 상징한다는 소위 기생의 '전통'이니 '법도'니 하는 것들은 구역질이 날만큼 비위에 거슬린다. 기생이란 존재가 소멸하지 않도록 지켜야 할 그 무엇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한순간 벼락치듯 쓸어버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세월에 따라 서서히 사라진다면 굳이 붙잡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춤기생 미스 민이 부용각의 마지막 기생으로서 '화초머리'를 올리는 날, 예전부터의 기방의 법도에 따른 의식이 어떻구 하는 타박네의 사설이 짜증스러웠다. 뭐라고 꾸며대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아닌가? 이 젊은 여성이 오늘 밤부터 공식적으로 매춘을 시작한다는 것. 화초머리를 올려준다는 남자와의 첫날 밤 미스 민의 춤사위에 온갖 의미를 실어대는 문장들은 공허하다. 옷 한겹 벗을 때마다 봉투 하나가 오가는 행위의 본질이 어떻게 달라진다는 것인지...

반백년을 기방의 부엌어멈으로 보냈다고 하는, 손님상의 상차림이 어떠해야 하는지 기생의 몸차림이, 기방의 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교하는 타박네는, 이해할 수 없어서 불쾌한 인물이다. 삼각눈에다 찔러도 진물도 안 날 것 같다는 이 노파에게도 자식이 있으며 그가 모성을 가졌음을 묘사하는 부분은 너무나 진부해서 뭐라 할 말도 없다. 그래, 모성은 전가의 보도다, 마음껏 휘둘러라. 타박네가 자식을 얻게 되는 사연도 황당하다. 엄마가 그리운 사내새끼는 기생집에서 먹고 마시다 엄마랑 음식솜씨가 비슷한 부엌어멈을 강간하는구나. 구역질이 난다.

쌩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엔 부용각 같은 기생집은 남아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마지막 기생집을 마지막 기생이 되어 지키겠다는 미스 민 같은 여성이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이라고 어딘가에서,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걸 허용하는 관계가 없겠냐마는, 적어도 풍류니 법도니 하며 꾸미고 포장해대는 일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꽃단장을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도대체 고명철의 해설은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여태 읽어본 해설 중에서 최고 수준의 횡설수설이다. 혹시 이 사람도 소설이 싫었던 건 아닐까? 원고료를 낼름 받았으니 뭔가 주례사를 읊어줘야겠는데 도저히 맘에 드는 구석이 없어서, 그래서 억지로 쥐어짜다보니 이런 횡설수설이 나온 걸 아닌지 상상해본다.

씩씩거리며 적어내리다가, 혹시라도 내가 틀린 건 아닐까, 뭔가를 놓친 건 아닐까 하는걸 보면... 이런 소심쟁이같으니라구...

덧글

  • Louise 2006/09/16 10:55 # 답글

    음, 저는 비린내나는 생명력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머리만 쓰고 사는 사람이니까요. ^^
  • 싸락눈 2006/09/16 11:25 # 답글

    저는 '비린내 나는' 생명력이니 '날것'의 생명력이니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저도 몸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죽었다거나 생기가 없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거든요. 오히려 '살아있다'는 게 꼭 바닥을 딩굴면서 추악한 꼴을 보여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아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골수가식분자'거나 '뼛속까지 스놉'인 것을 아닐까... 싶어 다소 두려운 맘이 들기도 합니다만... -_-
  • 아말테아 2006/09/16 20:56 # 답글

    위의 말씀에 공감해요. 그런 수식어가 남발되고 있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인텔리들의 자괴감(?)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남성들이 모성을 신비화하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 싸락눈 2006/09/16 22:35 # 답글

    혹시 그 'Lady Amalthea' 님이신가요? 반갑습니다 :-)
  • 우림관 2006/09/16 22:37 # 답글

    일본소설에서 게이샤와 도나산(게이샤의 물주)의 일주일간의 첫날밤(?)을 엄청나게 아름답게 묘사하는걸 싸락눈님의 "봉투가 오가는 행위"와 비슷한 논조로 부정하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나요.
    이런건 뭐라고 해야 될려나? 뭐랄까 남자들이 가진 환상? 남자들의 낭만? 을 위해 발전한 포장같은 뭐 그런거 아닐까요?
  • 싸락눈 2006/09/17 10:13 # 답글

    같은 행위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봐 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요. 남자들을 위한 포장이 맞는 것 같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여자의 입장에서도 조금은 위로를 받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 구아바 2006/10/17 11:12 # 삭제 답글

    그래도 내용을 떠나서 문장이나 글 자체는 잘 썼더군요. 안 읽히는 글은 아닙니다. -_-; 타박네가 애 가지는 부분에서는 정말 불쾌하더군요. 엄마랑 음식솜씨 똑같다고 솥 끓는 부엌에서 여자를 강간하고도 땔랑 금목걸이 하나 보내주고 애 뺏어가는건 무슨 ... (그걸 간직하는 타박네는 또 뭐냐) 옛것이라고 보존할 게 있고, 버려야 할 게 따로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뭐 그래도 작가가 묘사하는 기생의 삶 자체는 상당히 실감나고 슬프더군요.
  • 싸락눈 2006/10/19 00:37 # 답글

    네, 저도 잘 쓴 글이라고는 생각했어요. 내용이 워낙 제 생각하고는 다른 부분이 많다보니 한번에 쭉 읽히는게 아니라 좀 읽다가 쉬었다가 또 읽다가, 사실은 시작했으니 끝내야한다고 숙제하는 기분으로 읽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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