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
2005-12-9 5:10pm
용산 CGV 2관
이 시리즈는 갈수록 좋아진다. 1편과 2편은 사실 밋밋한 책읽기, 그것도 처음을 너무 천천히 읽기 시작하는 바람에 막판에 숨이 턱에 닿도록 내달리면서도 힘이 쫙 빠진 읽기였다. 배우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짐 데일이 읽어주는 오디오북이 차라리 더 흥미진진할 정도였다. 단 한 사람의 목소리였지만 적어도 그 방면에서는 베테랑의 연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3편에서야 겨우 책에 눌리지 않는, 나름대로 홀로 설 수도 있는, 영화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전편들에선 뻣뻣하기만 하던 어린 배우들도 드디어 연기란 걸 하기 시작했고 원작의 곁가지들을 아낌없이 잘라내서 2시간짜리 영화에 맞추는 '각색'이란 작업도 이루어진 것 같았다. 감독이 바뀌면서 전체적인 화면의 톤이 다소 어두워진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전편들의 마무리가 모든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어 깔끔하고 행복했다면, [아즈카반의 죄수]의 엔딩은 그늘지고 불안하다. 진실을 알았고 오해는 풀렸지만, 악인은 도망쳤고 억울한 누명은 벗겨지지 않았다.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싶은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직한 '성인 보호자'는 떠나거나 쫓겨다녀야 한다. 완벽한 결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왔으니 언제까지나 밝고 예쁜 화면만 나올 수는 없었으리라.
[불의 잔]은 전편보다도 매끈하게 뽑혔다. 원작의 분량이 갑작스레 늘어났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면서 들어낸 부분도 당연히 많아졌다. 책에서는 수십 페이지에 걸쳐 묘사되던 퀴디치 월드컵은 단 한장면으로 그쳤고 데쓰 이터들의 습격은 한순간에 야영지를 폐허로 만들고 지나가 버린다. 바티 크라우치의 쫓겨난 집요정과 허마니의 '집요정 권리 운동'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고 위즐리 가의 젊은 스놉 퍼시도 출연하지 않는다. 해리가 펜시브에서 지켜보는 데쓰 이터들의 재판 장면도 훨씬 간결해졌다. 거의 모든 것이, 책을 읽은 사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딱 그만큼으로 군살없이 날씬해졌다. 론의 질투-이해는 가지만 지켜보기엔 괴롭던-와 해리의 찌질한 자존심 싸움이 짧아진 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론과 허마니, 빅터의 삼각 관계(?)가 이루어지는 모양이 갑작스럽고 덜컹거리는 것은 아쉬웠다. 빅터가 이렇다 할 성격을 받지 못하고 '몸으로 하는 일을 더 좋아하고 말은 별로 없다'는 허마니의 한마디에 묻어가는 것도 그랬다. 원작의 빅터는 허마니를 보기 위해 도서관을 어슬렁거리거나 해리에게 혹시 둘이 사귀는거 아니냐고 더듬더듬 물어볼 만큼, 수줍어하면서도 때로 대담해서, (론만 아니라면, 오래된 관계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이 아니라면) 허마니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돌아와서는 애꿎은 빅터의 피겨에 대고 화풀이하는 론이 대책없이 귀여워보이는 것도 사실은 오래 지켜본 캐릭터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론은 이쪽을 조심해야 했는데...
볼거리는 굉장히 화려하다. 퀴디치 월드컵 경기장에서 아일랜드 응원단의 레프리콘은 정말 멋졌다. 보바통의 하늘을 나는 마차는 상상했던 것보다 작았지만 예쁘고 날렵했고, 덤스트랭의 배가 호수에서 떠오르는 모양은 그저 '우와!'할 수 밖에 없었다. 얼음궁전이 된 호그와트의 무도회도 화려한데다 검정 로브 아니면 청바지를 입고 나오던 캐릭터들이 개성에 맞게 화려한 연회복을 차려입은 모습은 정말 즐겁다. 찌질이라고 구박받는 해리도 연회복 입은 모습은 꽤 근사하다. 허마니는 물론 예쁘지만, 원래 꽤 예쁜 얼굴이다보니 책에서처럼 갑자기 예뻐져서 깜짝 놀라게 하는 맛은 없었다. 가난한 론의 구식 연회복은 참, 민망했다. 하지만, 화려한 배경의 명사 친구, 게다가 젊어 돌아가셨을망정 자식에게 한재산 남겨주실 만큼 유능한(?) 부모를 가진 친구 옆에서 누렇게 바랜 낡은 연회복을 입고 서 있으면서도 '니 옷은 멋지구나, 크흑'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우리의 론, 넌 정말 소시민의 영웅이야.' 위즐리 부부는 지니만 챙기지 말고 론에게 새옷을 사 주라, 사 주라!!!'
배우들의 성장에 관한 얘기야 워낙 많이 들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어찌 되었건 지금의 아이들이 시리즈 끝까지 가 주길 바라는 나로서도 해리와 론의 뜻밖의 근육질은 좀 걱정스러웠다. 자라는 아이들을 굶길 수도 없고, 참. 초 챙 역의 배우는 참 예뻤다. 부엉이 탑에서 해리에게 무도회 파트너를 신청받고는 선약이 있다고, 정말 정말 아쉬워하는 모습이 우찌나 사랑스럽든지. 출연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는데 다음 편을 기대해 본다.
[불의 잔]에서 죽어버리는 누군가가 세드릭임을 알았을 때, 사실은 한시름 놓은 기분이었다. 설마 론이나 허마니가 죽기야 하겠어, 하면서 제일 걱정했던 사람은 해그리드였다. 이때만 해도 덤블도어 선생께서 시리즈 중간에 하차하신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했었고, 없더라도 다음 얘기 이어가는데 별 지장이 없을만한 사람으로 해그리드가 제일 만만해 보였다. 하지만 아니길 바랬다. 이 아저씨에 대한 호감도 호감이지만 주인공이 상처입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냉정하지만, 세드릭은 일회용 캐릭터다. 잘 생기고, 성격 좋고, 주인공에게 잊지 못할 두 번의 패배를 안겼고, 마지막 순간 주인공을 성장시키기 위한 도구(?)가 된다. 조금, 아니 많이 안된 캐릭터인데 어딘지 낳설지 않다.
생각해보면, 모험의 마지막 순간은 언제나 혼자였다. [마법사의 돌]에서 허마니는 되돌아가는 약을 마셔야했고 [비밀의 방]에서 론은 무너진 벽 뒤에 남겨졌다. [아즈카반의 죄수]에서도 파트로누스를 불러낸 호숫가에는 혼자 갔다. 전편들에서는 그래도 마지막의 직전까지는 함께였던 친구들이 [불의 잔]에선 처음부터 미로 바깥에 남겨진다. 정말 자랄 거라면 혼자 자라라는 작가의 압박일까?
책을 읽을 때도 '프리오리 인칸타템'의 마법은 별로였다. 머릿속으로 그려본, 두 개의 지팡이를 연결하는 빛과 그 가운데서부터 만들어지는 돔 형태도 조금 우수웠다. 생각보다 짧게 지나가서 다행스러웠다. 되살아난 볼드모트의 얼굴은 책에서 묘사한 그대로였다. 조셉 파인즈는 분명 본 일이 있을 텐데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악당으로 성공하려면 말을 아껴라'는 원작과 영화의 공통된 교훈. 마음에 품고 있는 악한 짓은 말없이, 그냥, 빨리 해치울 것. 뭘 하려는지를 30초 이상 떠드는 악당은 절대 그 일을 못 한다. 그래서 세드릭은 죽었고 해리는 살았다.
'모든게 달라지겠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이미 어린 시절은 곧 끝난다고 예고했고, [불의 잔]은 확실히 끝냈나보다.
뱀의 발) [불의
잔]을 자꾸 [불의
검]이라고 써버려서 몇번을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