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페미니즘 - 벨 훅스

직접 보기 전까지 이렇게 작은 책인 줄 몰랐다. 요즘 쏟아지는 코엘료의 소설들과 같은 판형에 역자와 저자의 서문까지 포함해도 겨우 250 쪽 정도이다. 그런데 이 작은 책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을 읽어봐라, 그러면 페미니즘이 뭔지, 그게 무엇에 관한 운동인지 알게 될 거다" 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작은 책이 그의 손 안에 있기를 바래서, 그런 책을 아무도 써 주지 않기에 드디어 직접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b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개페미(or 개패미)", "페미(or 패미) 파시스트"에 대해서는 알만큼 안다고 떠드는 사람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 주고 싶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아마 거부할 거다. 그냥도 즐겁게 떠들 수 있는데 뭐하러 책까지 읽는 수고를, 하고 말 테니까 (오옷, 내가 봐도 좀 시니컬한 것 같다). 차라리 그런 사람들보다는 페미니즘에 관심은 있지만, 언젠가 제대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지만,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정말 페미니즘이 맞는 것인지 고민스럽고, 때때로 "개페미"의 폐해를 역설하는 누군가에게 그가 왜 틀렸는지를 설명해 줄 수 없어서 답답한 사람들이 읽는 것이 낫겠다, 나처럼. 물론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청산유수, 어떤 토론에도 말문이 막혀 속으로 가슴만 치는 일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D

이 책을 읽으면서 로즈마리 퍼트남 통의 [페미니즘 사상](아직 다 못 읽었다. 조금만 쉬었다 읽자고 생각하고 잠시 르귄의 'earthsea'를 집어들었다가, 아무래도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다시 시작하지 못할 것 같다 -.-;;;)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통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소위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그토록 비판을 받았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통은, 그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총체적인 목표는 "자유가 번성하는 정의롭고 공감적인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들, 중산층 출신의 초기 페미니스트들이 중산층 여성들의 관심사를 대변했다는 사실이 옳지 못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억압받아서, 한마디로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보니 다른 일에 관심을 둘 수 없는 그런 처지의 여성들이 오늘 먹을 것이 없어서 내일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페미니즘에 뛰어들기 전엔, 그들보다 운이 좋아 먹고 살만 하다면 입 닥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판받는 이유는 '먼저 시작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먼저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멈추었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니, 그저 멈춰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늦게 시작한, 원하던 바를 어느 정도 얻어내고 느긋해진 그들과 달리 좀 더 필사적이었던 다른 이들을 방해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기존의 가부장제 사회의 일부가 되어 거기서 이익을 얻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점이 통의 책에서는 모호했다.

같은 맥락으로 흥미롭게 읽었던 게, 여성들 사이의 계급이 관한 내용이었다.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 전문직 여성들, 기타 이놈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상대적으로 편하게 살 수 있는 여성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보다 덜 가지고 덜 배운 여성들을 착취할 수 있다는 사실, 아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예로서 '계급적 특권을 가진 백인 여성들이 하층 계급 여성들에 대한 지배와 비인간화에 가담하지 않는 방식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파출부를 고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를 토론했던 일화를 얘기할 때는 뜨끔한 마음 한편으로 '그럼 어쩌라구?'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벨 훅스는 '그 여성들 중 일부는 그들 자신과 그들이 고용한 여자들 사이에 긍정적인 결속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어 넓게 보아 불평등이긴 하진만 어쨋거나 상호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란 말로 다소 모호하게 맺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 작은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모두 말 할 수도 없고, 일단은 내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부분들에 대해서만 정리해 보았다. 읽기 전부너 좋은 책이란 얘기를 많이 들었고 읽고 나니 정말 좋은 책이었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궁금했던 많은 일들에 대해 부분적이나마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있었고 좀 더 곱씹어 생각할 부분도 던져 주었다. 작가의 말대로, 오늘의 페미니즘 실수도 많이 했고 한계도 많았지만, 아직도 유효함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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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얘기지만, 내가 중산층 여성들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에 그렇게 예민했던 이유는 사실 나 역시 계급 문제를 들고 나서면 적어도 '중산층'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먹이고 입히고,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만큼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신 부모님 덕분에 대학 나오고, 소위 전문직이란 간판도 달고 있다.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면, 또 아이를 낳게 된다면 (현재의 내가 내 주위의 남자들에게 느끼는 다양한 정도의 혐오감과 가끔 가다 보는 괜찮은 남자들이 이미 눈썰미 좋은 누군가의 남편이란 사실을 고려하면, 좀 힘든 얘기이기는 하다), 틀림없이 강유원이 그의 [책]에서 그렇게 씹어대던, 내 자유를 뒷받침해 줄, 아이 돌보기와 집안일을 도와 줄 '아줌마'가 필요할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내 친구들의 대부분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든 없든,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그들 중 일부는 중국인 아주머니를 고용하며 이주 노동자 착취(?)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썩 자유로운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 일을 포기하고, 더 훌륭한 '내 아이 직접 키우기'나 '가족을 위해 집안을 돌보는 일'에만 전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지금의 내 일을 갖기 위해 받아야 했던 교육과 노력도 그렇게 가벼운 것은 아니다. 또 사람 일이 어찌 될 줄 어떻게 알겠나? 믿고 인생을 함께 해도 좋다고 생각한 그 사람이 어느날 발등을 찍어버린다면? 가난하고 할 줄 아는 것 없는 엄마가 되어야 하나? 하긴 혹시 친권은 아비가 우선이라고 데려가 버릴지도 모르기는 하겠다. 적어도 누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삶은 살지 않겠다. 거기다가 '전문직 여성의 주체적 삶'이란 이름이 붙건, 역시 '전문직 여성의 자아 실현'이란 이름이 붙건 말이다.
또 하나 궁금한 것, 내가 '아줌마'에게 얼마만큼의 댓가를 지불하면 그를 착취하지 않는 것이 될까? 하나 더, 강유원은 조한혜정이 아줌마 봉급을 떼어 먹었다는 증거라도 잡은 것일까?




by 싸락눈 | 2005/07/24 20:57 |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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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일다의 블로그 소통 at 2009/02/19 02:28

제목 : 페미니즘, 당신의 계급을 묻다
페미니즘, 당신의 계급을 묻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정안나 벨 훅스의 에 크게 공감한 기억이 있어 이 책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계급”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신분제 사회가 아닌 한국에서 무슨 계급?’이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여러 상황들-부와 출생의 차이를 통해 고착화되는 주거와 교육, 건강-을 본다면, 단연코 한국은 계급의 심화를 걱정해야.....more

Commented by snowfish at 2005/07/25 01:18
dma...저는 아주아주 궁금한 게요, 강유원이 정말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아줌마를 쓰는 것이 여자의 자유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집안일과 육아는 엄연히 부부의 공동책임인데, 만약 그걸 위해서 누군가의 노동을 착취해야 한다면, 그건 남자와 여자, 즉 부부 모두가 착취의 주체가 되는 거 아닐까요? 설마 그 똑똑한 사람이 지금 같은 때에 가사와 육아가 부부의 공동 책임이라는 그 대전제 자체를 무시하는 글을 그렇게 공공연하게 써 제꼈을 리가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원래 강유원을 안 좋아해서 그 '책'을 안 읽었거든요. 죄송합니다.-_-)
Commented by snowfish at 2005/07/25 01:21
아, 참. 책갈피와 고디바 정말 감사합니다.
얼른 자랑샷을 올려야 하는데 피곤이 좀처럼 안 풀려서 카메라 들 기운이 없습니다.-_- 이럴 때면 정말 작고 가벼운 카메라 하나 갖고 싶어요.
Commented by 싸락눈 at 2005/07/25 23:30
참, 정말로 그렇군요. 강유원이 아마 까~암빡 했을까요? 그 '책'을 안 읽었다고 죄송하실 것까지야...:)

코코아는, 통에도 써 있지만 꼭 따뜻한 우유에 타서 드셔야 해요. 예전에 우유 떨어졌을 때 좀 묽기야 하겠지만 어떠랴 하면서 물에 탄 적이 있었는데 결국 버렸어요.
Commented by John Doe at 2005/07/27 22:17
행복한 마초이즘이란 책도 제가 쓸 겁니다! 반드시! 불끈!
Commented by 싸락눈 at 2005/07/27 22:23
레퍼런스로 '행복한 페미니즘'을 추천해요~
Commented by ㅇㄱㅎ at 2005/08/04 04:38
-_-

아망고 님을 위해서 제가 수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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