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 토니 모리슨/(김선형 옮김)


모리슨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처음으로 집필한 파라다이스는 폭풍 같은 찬반양론에 휩쓸린 화제작이다. 과연 노벨문학상 수상자다운 최고의 걸작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는가 하면, 쓸데없이 무겁고 뻔한 상징과 복선으로 가득하고, 지나치게 설교조이며, 읽기만 힘들다는 악평도 쏟아졌다. 이 작품의 종교적 색채도 격렬한 찬반양론에 기름을 부었다.
-역자후기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쪽을 지지한다. 무겁고, 상징과 복선으로 가득하고, 읽기에 힘들지만 이렇게 찬찬히 곰곰이 씹어가며 마음 아프게 읽은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오클라호마의 외딴 마을 루비, 백인들과 그들보다 밝은 피부색의 흑인들에게 박해 받고 거부당한 밤처럼 순수한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들이 조상들과 신 앞에서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아내와 남편은 서로 아끼고 젊은이들은 나이든 이를 공경하고 이웃들은 다정하고 방종한 쾌락도 범죄도 없는 낙원, 적어도 그들은, 특히 그들 중의 일부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그렇게 생각하고 영원히 지키려고 한다. 마을 바깥의 수녀원에는 여자들이 모여 산다. 피부색도 나이도 제 각각인 여자들의 공통점은 수녀원 밖의 세상에선 어디 한 곳 머무를 곳이 없다는 것 뿐. 가족에게 끊임 없이 모욕당하고 심지어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느끼는 여자, 공허하고 환멸스런 삶을 버티기 위해 오히려 거칠고 방종한 생활을 하던 여자, 마음의 상처를 무디게 하기 위해 살갖에 상처를 내고는 흘러넘치는 피를 보며 위안을 찾는 여자, 진정이라 믿었던 사랑을 잃고 비웃음과 멸시를 피해 도망쳐 온 소녀,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이 여자들을 받아들이고 위로하는 여자, 하지만 사실은 그녀 자신이 가장 큰 위로를 필요로 하는 여자가 있었다.

누군가가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다른 누군가는 존중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누군가는 그들이 지켜온 무엇인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여겼다. 밝은 피부를 지닌 사람들로부터의 박해를 기억하며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세우고 지켜온 사람들은 어느새 그들을 박해하던 사람들과 똑같이 피부색으로 타인을 평가하며 순수하지 못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을 멸시하게 되었다. 너무나 소중한 그들만의 낙원이기에 낙원의 풍경을 어지럽히는 이들을 무시하고 숨길 뿐, 그들 개개의 사정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과거, 슬픔과 고난을 이겨 낸 현재, 가장 잘 하고 믿고 있는 순간이 사실은 길고 긴 타락과 부패의 과정임을 모르는, 때로 모른 체하는 어리석음.

노골적인 비난이나 상찬은 없다. 지긋한 시선은 쫓기는 여자들과 사냥하는 남자들의 긴 과거와 현재를 지켜보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그들의 가장 깊은 비밀을 차근차근 털어 놓는다. 사냥하는 남자들의 낙원, 그들만의 공동체는 한편으로 백인 여자 하나의 죽음이 밝혀지면 공권력에 의해 그대로 붕괴되어버릴 허약한 존재이다. 사냥하는 남자들 역시 바깥 세상에서는 여전히 쫓기는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결말이 멋지다. 루비도 수녀원의 여자들도 그들의 낙원을 다시 만들어나갈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를 얻는다.

한글판의 번역자처럼, 나 역시 그들이 첫번째로 쏘아 죽인 백인 여자가 누구일지가 내내 궁금했었다. 나름대로 메이비스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작가님이 제대로 한방 먹여주시는구나. 인종이야말로 인간의 정체성에 가장 비본질적인 부분이라...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작가님, 존경합니다. 당신이 받은 상이 절대로 피부색에 따라 차례로 나누어 준, 의미보다 포장만 화려한 물건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당신 때문에 전철에서 눈물 참느라고 정말 혼났습니다 -.-;;;

수많은 등장인물과 그들의 과거, 현재의 촘촘한 그물눈을 따라가기가 몹시 힘들어서 결국 번역판의 도움을 얻었다. 역자인 김선형 씨의 번역을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기에 마침 잘 됐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전문 번역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을 만큼 충실한 글을 읽게 되어 또 기뻤다.


by 싸락눈 | 2005/04/24 20:32 |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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