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교보에서 가방을 잃어버릴 뻔했다. 한 30분 정도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눈 앞이 캄캄하더라. 집에 있는 노트북이 고장나는 바람에-새 노트북을 사고나서 바로 고장이 나 버리다니 정말 기계에도 감정이 있지 않나 싶어진다-새로 산 노트북을 매일 매고 다니는 가방에 넣고 아답터랑 마우스랑 카메라, 새로 산 전자 사전, 전철에서 읽을 책은 분홍색 쇼핑백에다 넣고 교보엘 들렀다. 외국서적 코너에서 재스퍼 포드의 하드커버 소설이 5000원이라기에 3000원짜리 앤 맥카프리의 환타지 페이퍼백이랑 계산을 했다. 목이 마른 것 같아서 멜로디스에서 딸기 쉐이크 하나를 사서 테이블에다 책을 담은 쇼핑백을 올려 놓는 순간 분홍 쇼핑백을 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정신이 멍했다. 전철에 두고 내린 건지 서점 안에서 잃어버린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다가 전철 안에서는 줄곧 손에 들고 서 있었으니 아마도 서점 안에서 잃어버렸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외국서적 코너 밖에 간 데가 없는데 책 고르다가 바닥에 내려 놓았나? 미친 듯이 딱 한 입 마신 쉐이크 컵을 들고 외서 코너를 두세번 돌고 나서야 직원에게 물어볼 생각을 했다.
"저기요, 가방을 잃어버렸어요..." 아마 내 얼굴, 허옇게 질려있었을 것이다. 카메라, 사전, 아답터,... "어머나, 어디서요?" 고맙게도 직원 언니는 진심으로 걱정스런 얼굴로 서점의 분실물센터랑 여러 카운터에다 전화를 걸어 분홍 가방의 행적을 물어 주었고 나와 함께 벌써 몇 번을 돌았던 외서 코너를 다시 한번 구석구석 돌아주었다. 그리고는 연락처를 남겨 주면 가방을 찾던 못찾던 전화를 해 주겠노라고 했다. 핸드폰 번호를 적고 나서 돌아나오는데 눈 앞이 빙빙 도는 느낌, 울고 싶은 심정으로 외서코너와 멜로디스 사이를 빙빙 돌다가... 찾았다! 외서코너 앞의 도서검색대, 거기서 수잔 손탁을 찾으면서 잠시 가방을 내려 놓았다가 까맣게 잊고 돌아섰었다. 아아, 살았다, 잃어버린 물건들이 아까운 것 만큼이나 마님의 잔소리도 두려웠었다 T^T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던 언니에게 가방을 찾았다고 말해주러 가는데 언니가 먼저 보고는 "찾으셨군요!" 한다. 입이 귀에 걸려있음을 의식하며 "고맙습니다" 하고 꾸벅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걱정스런 얼굴을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나랑 같이 매장 안을 헤메 주어서, 고맙습니다, 여기저기 분실물 들어온 것 없느냐고 전화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찾았을 때 기뻐해 주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직도 손에 쉐이크 컵을 들고 있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며 남은 쉐이크를 마시고는 광화문 지하철역 출구를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도...이 위기를 넘긴 것이 신의 도움이라면, 내게 도움을 주셨을 만한 신은 지름신뿐이로구나. 앞으로도 모시는데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D
카메라를 잃어버렸다면 절대로 올리지 못했을 사진들 몇장, 전철 타기 직전 신도림 역에서 찍은 것들이다.